스노볼 드라이브 (2021)
눞 2024-03-07 16:24

때때로 여름이나 겨울이 끝나지 않을 거 같다고 느껴질 때 이 계절이 계속 되는 상상을 해본 적이 많았다. 사계절이 사라지고 한 계절만이 남을 때 으레 이 순간을 종말과 멸망을 떠올리게 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보이지 않던 시간이 빠르게 줄어드는 걸 느끼게 된다.
나는 여름과 겨울을 같은 선상에 둔다면 그래도 겨울이 길어지는 게 좋다는 쪽이었다. 여름은 너무 덥고 습하고 줄줄 흐르는 땀에 불편함이 엄청날테니까. 그렇다고 다 벗어던질 수도 없을테니까 불쾌지수는 계속 상승할텐데, 그거에 비하면 겨울이 계속 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상상의 꼬리를 이 책에 붙였다. 녹지 않는 눈이 쌓이는 겨울, 조금 다른 계절에 갇힌 사람들 속에 나를 넣어본다. 방부제같은 눈이 내리고 그게 피부에 닿으면 끔찍한 고통을... 과일이나 식물은 재배할 수 없어서 사라져가고...
하나하나 짚어보니 곧 닥칠 미래와 흡사하기도 해서 책을 읽는 내내 흥미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모루와 이월이의 서사가 좋아서, 둘이서 목적 없는 드라이브를 시작할 때에는 그들의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되면서도 걱정돼서 제목 옆에 1권이라는 말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열린 결말의 단점이다.

사실 스노볼 드라이브는 재난아포칼립스고, 서로에게 이끌리고 관심을 가지는 게 마냥 오타쿠적으로 좋아서 그냥 계속 재밌다는 말만 하고 싶다. 그렇지만 정말 재밌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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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클럽을 통해 조예은 작가님을 알게 되고 책 두 권을 읽게 되면서 작가님의 문체가 취향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조조클럽으로 나의 취향을 알아갈 수 있어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