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긴긴밤이라는 책을 알게 된 경로는 도서 팟캐스트였습니다. 진행자인 작가님을 좋아했는데, 그 작가님께서 추천사를 쓰신 책이었거든요. 조조클럽 활동을 통해 미루고 미루던 책을 읽게 되어 기쁩니다.
어린이 도서에는 항상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도 코가 여러번 시큰해졌네요. 책에서는 다양한 소수자를 다루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단 한마리 남은 흰바위코뿔소, 불운한 검은 반점이 있는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 오른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 펭귄 치쿠와 그의 애인 윔보가 그렇습니다. 또 긴긴밤에서는 끝나지 않는 고통과 두려움이 등장하는 동시에 항상 반짝이는 별이 존재합니다. 그런 장면이 특히 좋았던 것 같아요. 실은 가장 마지막에 실린 심사평의 내용 전부가 제가 느낀 감동과 감정을 모두 요약해주는 것 같아서 아래로는 특별히 좋았던 문장과 심사평의 일부를 적어둡니다.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나도 예전 일들을 수없이 돌이켜 보고는 해. 그러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오르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것들도 있어. 그때 바깥 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야."
노든은 뭉툭한 코뿔을 눈앞에 보이는 철조망에 들이받았다. 욱신욱신 아픔이 전해졌다. 그렇게 하면 다 지워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 더 철조망을 있는 힘껏 들이받았다. 아내도, 딸도, 앙가부도, 그리고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인간들도 다 지워버리려고 계속해서 철조망에 뿔을 박아 댔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지워지지 않았따. 아무리 노력해도, 어떤 방법을 써도, 노든은 여전히 모든 것을 기억했다.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거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멀리서 보면 사막은 황량해 보이고, 그 위를 걷는 나와 노든은 가망이 없는 두 개의 점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서 들여다본다면, 모래알 사이를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개미들과 듬성듬성 자라는 풀들, 빗물 고인 웅덩이 위에 걸터앉은 작은 벌레들 소리, 조용히 스치는 바람과 우리의 이야기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은 모래 속에 숨은 생명들로 가득했다. 살아남은 기적은 우리에게만 특별하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저기 지평선이 보여? 초록색으로 일렁거리는. 여기는 내 바다야."
나는 절벽 위에서 한참동안 파란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바다는 너무나 거대했지만, 우리는 너무나 작았다. 바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지만, 우리는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나간 노든의 아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죽지 않은 연인을 뒤로하고 알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던 치구의 심정을, 그리고 치쿠와 눈을 마주쳤던 윔보의 마음을, 혼자 탈출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던 앙가부의 마음을, 코끼리들과 작별을 결심하던 노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
이 작품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의 고통과 두려움, 환희를 단순하지만 깊이 있게 보여준다.
어린 펭귄이 절벽 위에서 얻은 깨달음은 처연하게 아름답다. (중략)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향해 있던 모든 이의 긴긴밤을, 그 눈물과 고통과 연대와 사랑을. 이제 어린 펭귄은 자기 몫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바닷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낼 것이며,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오늘도 "별이 빛나는 더러운 웅덩이" 속을 타박타박 걷고 있을 아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버팀목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힘들고 무서워도 도망가지 않고 소리지르고 울면서 똥을 뿌리는 것이 최선임을. 다리나 눈이 불편한 친구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불편한 다리와 눈 옆에 자연스레 서는 것이 순리임을, 그렇게 나와 친구를 지키는 것이 더러운 웅덩이를 볓빛같이 만드는 일임을 알고 서로에게 기대어 오늘을 버티고 내일로 힘차게 나아가기를.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인사하게 될 것이다. "코와 부리를 맞대고" 눈과 눈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영혼과 영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