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youtu.be/NPoNl1oQQWk 책을 읽을 때 들었던 플레이리스트입니다. 들으면서 감상하니 더욱 몰입이 됐어요. 아직 독서 전이시라면 함께 감상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이 따뜻하고 보드랍기만 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원한 적 없어도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은 끊임없이 생긴다. '다들 어떻게 사는 걸까?' 뜻대로 풀리지 않는 날이면 불쑥불쑥 이런 의문이 들곤 한다.
"엄마,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강해? 어떻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어요?"
"하나도 안 강해. 그냥 한 거야. 살려고."
한 번은 어머니라면 아시지 않을까 해서 여쭤봤다. 그러나 답을 듣는 순간, 정말로 모두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살아가는 데에 깔끔하게 떨어지는 해답은 없었다. 앞일을 모르는 대로 헤쳐나갈 뿐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데 그게 못내 무서워서 매일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전보다 더욱 대단하다 여기게 됐다. 긴긴밤 속의 치쿠와 윔보, 노든과 어린 펭귄이 멋져 보인 것도 그래서이다. 그들은 사랑을 위해 많은 것을 순리로 받아들이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악몽이 되어 찾아올까 봐 뜬 눈으로 긴 밤을 견디며 또 하루를 보내면서도 다른 이의 힘이 되어준다. 어린 펭귄은 이별을 슬퍼하고 홀로서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나아가야 할 때에는 거대한 흐름에 뛰어든다.
삶이란 나의 것인 동시에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온전히 '나'로만 이루어졌다고 말하기 불가능하다. 하나씩 꼽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내가 된다. 이 이야기는 작은 알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던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의 이야기이나 어린 펭귄에 의해서 독자가 모를 곳에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또 책 밖에서 긴긴밤을 보냈을, 앞으로 보내게 될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이다. 책을 덮었을 때, 사랑과 연대의 일부가 된 나와 같은 사람에 의해서.
이 책은 끝까지 완벽했다. 풍경이 담긴 삽화를 통해 그간의 일을 다시 한 번 곱씹을 시간을 마련해 준다. 특히 마지막 그림이 마음에 강하게 남았다. 바삐 앞으로 나아가는 펭귄 무리 중 유일하게 나를 돌아보는 펭귄이 있다. 나와 눈을 맞추는 그 애가 100페이지가 넘는 여정을 함께해 애틋한 내 펭귄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노든이 옳았다. 이름이 없어서 뭐라고 소리 높여 불러 세워야 할지 모를 수는 있어도 애정을 품은 대상은 못 알아볼 일은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의미다.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무척 궁금하다. 같은 책이어도 시간이 흘러 자란 후에 다시 읽으면 놀라우리만치 깊이가 다른 책이 종종 있다. 분명 이 책도 그 중 하나이리라 생각한다. 더러운 웅덩이 속 반짝이는 별을 발견하듯,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기를 겪을 때 힘을 받을 수 있는 이 책의 존재를 기억 저편에서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아래에는 노든이 어린 펭귄에게 한 말을 읽고 떠올린 시를 한 편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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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