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은 문제가 없을 확률도 있어요."
"그게 희박하다는 게 문제지."
"그래도 할래요."
유전적 우성학을 통해 모든 게 결정되는 시대. 유전자 조작없이 열성적 유전자를 배제하지 못한 빈센트는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꿈을 외면당한다. 어차피 사회는 그를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며, 과학적으로 제롬에게는 꿈을 이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빈센트는 희박한 가능성을 믿어보겠다 말한다.
가타카는 유전학적으로 새겨진 운명을 인간이 이겨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크게는 우생학을 다룬다. 하지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내려올 때 쯤에는, 이만큼의 과학적 발전을 이루지 않아도 우리는 매 순간 빈센트와 같은 상황을 겪으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수많은 선택의 지점은 대부분 확률적으로 결과가 나와있다. 그렇기에 이 확률은 나의 선택을 반하기도 한다. 나는 이 길을 지속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보통은 더 높은 확률을 따르지만, 선택이 아니게끔 그것이 옳다는 물살에 휩쓸리기도 한다.
단순히 수치로 보자면 어느 한 쪽이 우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결국 모든 가능성의 합은 100으로 끝이 난다. 실패의 가능성이 있다면, 반대로 성공의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곧 잘 잊어버리는 것 같다. 나쁘다거나 멍청한 일은 아니다. 사람이라면 편한 일을 좇기 마련이고, 안정적인 보상을 원하는 게 당연하니까. 그렇기에 모든 이의 반대 앞에서서 아주 작은 가능성을 말하는 빈센트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나도 언젠가는 내가 바라던 일 앞에서 낮은 성공의 확률을 믿을 수 있을까?
"나는 너에게 신원만 빌려줬지만, 너는 나에게 꿈을 빌려줬잖아."
또 기억에 남는 대사. 꿈을 빌려주었다는 것은 결국 돌려주어야 하는 일이다. 환히 타오르는 빈센트의 꿈을 맛보았음에도 살아갈 이유를 얻는 것이 아닌, 과거의 영광을 안은 채 빈센트에게 뒤를 물려주는 제롬의 선택이 씁쓸하면서도 로켓을 쏘아올리게 하는 불꽃과 닮아 아름답고 슬펐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