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rbet


벌새 (2019)
2023-06-17 00:26

 트위터에 "무기력할 때 이것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정도의 늬앙스로 20초짜리 영화 클립이 돈 적 있어요.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어." 정말 많은 도움이 됐었는데, 이게 이 영화에서 나오는 거였군요…
 아는 배경에 아는 감성 아는 느낌… 공통된 정서와 한국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각. 익숙한 청소년기 시절은 정말 많은 걸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장남은 혼자 방을 쓰고 다른 여자 동생들은 같은 방을 쓴다던지, 가부장제적인 대화나, 부부 싸움 이후에 바로 다음 날은 같이 앉아서 TV를 시청하는 부모님이라던지.

 중간에 나오는 삼식만천하 지심능기인(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가 인상 깊었네요. 특히 청소년기를 요약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영화에서도 그런 대사나 장면들이 정말 많이 나오죠… 나 너 좋아한 적 없어. 라던지.
 
 ─ 유리야. 너가 나 좋아한다고 했잖아. 나도 그래서 잘해보려고.
 ─ 언니, 그건 지난학기의 일이잖아요.

 ─ 너 그거 알아? 너 가끔 니 생각만 한다.
 ─ ….
 ─ 서 있기만 하고 왜 안 와.

 등등.
 성장기 청소년의 감정은 어째서 이렇게 다양한 걸까요. 결이 섬세하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감정을 느끼는데도 그것을 말로 풀어 설명하면 미성숙하기 때문에 무엇하나 완성된 게 없는 느낌. 불완전하니까 앞과 뒤, 겉과 속이 다른 채로 매일 바뀌는 존재가 청소년기인 게 아닐까요.

 그럼에도 따뜻한 이야기라는 것을 영화 내 여러 연출을 보며 느꼈습니다. 특히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들은 다음에 찾아간 무너진 성수 대교와 잔잔히 물결치는 한강을 보여주다가 다음 씬에 바로 가족들이 전부 모여있는 식사 자리와 학교를 비춘다는 점에서요. 그리고 선생님의 편지 내용이 나오죠.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엔딩 크레딧이 전부 올라갔을 땐 영화 제목이 벌새인 이유가 궁금했어요. "꿀을 찾아 먼 길을 나는 벌새처럼 사람들이 제각각 삶의 여정을 사랑하고 희망을 놓지 않으며 살아가자는 영화의 메시지에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고 감독님이 말씀하신 기록이 있더라고요. 메시지에 걸맞는 마무리를 가진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년도인 2019년을 기준으로 하면 1994년에 중2였던 은희가 2019년에 40살이더라고요…. 은희는 어른이 돼서 선생님을 등장시킨 좋은 만화를 만들었을까, 그런 생각도 같이 들었어요.
06.17 00:41 답변